2016년 6월 4일 토요일

변명


지금의 나를 이룬 것은 실상 어머니의 뱃 속에서부터 아니 아버지의 정자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세포들의 단편적인 경험의 합인 것이 맞다. 70억 명의 생명 가운데 같은 경험이 어디 있겠냐만은 몇 개의 문항 앞에 놓인 한국 청춘에게 생각나는 답은 뻔하디 뻔한 남들도 다 갖추고 있을 법한 그런 진부한 낱말들의 구성일 뿐이다. 합격 수기나 견본 자소서를 읽어보면 누가 봐도 훌륭한 답이 있고 우리는 그 앞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우리는 그냥 인생을 살아왔을 뿐인데, 숨 쉬고 밥 먹고 자고 그냥 한 개체로서 충분히 최선을 다하면서 생명을 유지해왔는데 왜 우리는 평가받고 그로 인한 상실감을 느껴야 할까?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멸시, 상실감, 나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모두 취준생의 가슴을 짓누른다. 주변 지인들의 시선들도 있겠지만 나 자신이 나를 견디지 못하는 그 수치심이 나 자신을 탓해야만 하는 이 구조가 스스로를 조여온다.
사실 회한이 들면 안되는 일인데, 경제논리에 의하면 당연한 일인데, 그 정신적 피해는 고스란히 20대에게 돌아간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일자리는 그대로인데 윗사람들은 빠질생각도 안한다. 대학진학률은 전세계 최고이고 고학력자는 늘어가지만 대학에서 배운 것들 중 쓸모 있는 것들은 손에 꼽힌다.
졸업할 즈음, 맨큐1장의 사례로 나온 대학입학의 기회비용과 효용에 대한 글이 머릿 속을 반짝하고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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