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고보니 내게 이런 블로그가 있었음을 오랜만에 또 인지했다.
꽤 오래전부터 유지해왔고 글은 정기적으로 써보자고 했지만,
자주 보지 않다보니
결국 또 흐지부지 되고 마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향적인 사람에겐 자신을 외부에 투사할 수
있는 좋은 통로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밖에서 자신을 보
여주는 것에 미숙한 그들에게 타인을 끌어낼 수있는 힘이
자신에
게도 있음을 증명하는 도구가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마음이 답
답할 때마다 가상의 독자를 두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한 기분이 들어 마음을 털어논 기분이 들었고 생각이 정
리되어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기적으로 이렇게 뇌를 비우고 나의 삶을 정리하는 시
간을 가져야만 한다.
2.
일찌감치 그만두려던 회사는 다른 목표의 등장으로 어쩔 수 없이 더 다니게 되었고, 나름 괜찮은 근무지에 있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조직에서 엄청나게 뛰어나서, 내 능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기 싫다, 이런 것도 아니었다.
이 조직이 병신같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신분이 나를 옥죈다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목적이 직장 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더 나은 조직을 찾는 이직활동이 결국 내 삶의 목표는 될 수 없겠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된 것이다.
회사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함으로써 대가를 받으며 그 대가
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회가 돌아가는 톱니의 일부분의 역할
을 할 수 있다.
절대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톱
니의 역할을 해야하고,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들의 덕택으로 살
아가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 있어, 자유 시민의 삶이 보장
되는 국가에서, 누군가의 밑에서 평생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
닌 남이 시키는 일만을 하며 살아간다면
내가 군대에 있을 때와
무엇이 그렇게 크게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10
년, 20년 후의 나에게 떳떳할 자신이 없었고 나이가 들어 내 옆
에서 방구나 뀌고 트름하며
여전히 눈치만 보며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싶진 않았다.
물론 하루 8시간만 적당히 타협하고 자신의 삶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큰 고통없이 유지할 수 있는 job의 소중함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는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리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때 한편으로 캥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안락함으로 보이는 그 시간들이 향후의 고통의 연속으로 변모할 것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고 생각했다.
내 성격에 하고싶은 것을 애써 무시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기만이 될 것이다.
3.
삶의 자유는 온전히 내 마음을 잘 지키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믿고 있었다.
내 빵을 내가 사 먹지 않았을 때까지만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경제적인 걱정을 하지 않을 때 사람은 도덕이나 윤리 그리고 철
학에 대해 깊이 사유를 할 수 있다.
당면한 생존이 너무나 급하면, 옆 사람이 어떤지, 삶이라는 게 무엇이고 정의는 어떤 것인지 따질 겨를조차 없게된다.범죄를 미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루고 있는 문화는 모두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이후에나 이뤄지게 된다는,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사회시간에 원시인의 진화과정을 통해 이미 다 배운 것을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야 너무나 늦게 체득하고 말았다.
자신의 빵을 당당하게 만드는 사람이라야 온전히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고, 세상 앞에서 일대일로 싸우며 다른 이들의 공격에도 공정히 맞설 수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에는 그런 역할을 노예에게 아웃소싱 했고 지배계층은 온전히 놀고 먹으며 남는 시간에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런 위대한 사상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도 크나큰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평생을 후원을 받으며 산 마르크스의 노동철학을 노동자계급이 신봉하는 것도 인간세상의 웃기는 점인 것이다.
겪어 보아야, 현실을 깨닫게 된다.
20대 중반까지 난 또래보다 조숙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나만 깨달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지적 허영에 빠져 철학서도 읽고 어려운 소설만을 골라 읽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삶은 그런 데서 깨달음을 주지 않았다. 내 딴에는 많은 것을 느낀 양 독후감도 쓰고 그랬던 것 같지만, 전부 허울뿐이었고 상상에서 이뤄진 것들이 많았다.
우선 생존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삶의 무게를 알게 된다.
초 중등학교 때도 봉사활동을 시키기보다, 부모님 도움없이 자기가 벌어서 사는 체험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대학 때 내 용돈도 내가 제대로 벌어보지 않았다는 게, 지금 내가 처음부터 갈피를 못잡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꺠닫게 해줬다면 5년 정도의 시간은 아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지나간 세월을 더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5년을 더 젊게 사는 수 밖에는 없다. 남들보다 더 움직이고, 편한 것을 찾아가는 생활을 계속해서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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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0일 수요일
`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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