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뭐 눈엔 뭐만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객관적인 진실인양 믿게 되니 계속해서 나의 입장이 모두에게 대표되는 양 지껄이게 되겠지. 타인의 눈으로, 나에게서 유체이탈해서 상황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숙제

  • 아는 것의 시각화 
  • 설명할 사항에 대한 명료화
  • 머리로 하는 일을 가슴으로 느끼는 전인격화
  • 해야할 일을 미루지 않는추진력
  • 함께할 때 피하지 않는 당당함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할 수 있는 진중함

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우리들

 인간에 대해서 탐구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아무래도 직접 만나 서로 교제하는 것 같다. 한동안 안에 갇혀갖고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남을 판단하곤 했었는데 그게 분명 잘못된 것이란 걸 또 한 번 깨달은 듯. 우리가 득도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으면. 그걸 자꾸 까먹어서 말하지 않으려 하고 귀찮게 여기다가 관계가 황폐해지곤 했던 것 같다. 필요한만큼 표현하고 상대에 대해서도 궁금해해야 서로를 더 알 수 있는 것인데.

「Fault in Our Stars」




 죽을 고비에 처하지 않아도 삶의 소중함을 알고 약자를 배려하는 것의 의미를 아는 것이 그렇게 쉽다면 우리 사회가 어두운 일로 물들여질 일은 없겠지. 괴물 같은 자본주의는 우리를 실상에서 멀어지게 하고 대체품, 물질과의 관계에 한정 짓게 했고 사람에 대한 애정은 줄어들게 되었다. (사실상 이 영화의 주인공도 돈이 없었다면 조금의 숨을 쉬는 것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에겐 영혼이 정말 아름다운 "special one"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시한 부 인생의 암 환자들이나 곳곳의 장애인들, 가진 것 없는, 그러나 마음만은 누구보다 넉넉한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가 꽃다운 나이 18, 19살 즈음에 죽어가는 것은 영화 속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너무나 "unfair"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짧은 인생을 사고 떠나가는 영혼들을 신은 기억할 것이다. obliviation(망각)이 모든 이에게서 자신을 지워버릴 것이라고, 그것이 가장 두렵다고 한 주인공이었지만 그가 했던 모든 행적들은 분명 이 땅에 쓰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에 대해 영화 보는 내내 생각했다. fault......fault..... 우리 별에서 일어나는 잘못이 무엇일까? 그것은 영화를 보고 있는 나에게 있을 거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너무나 소중한 삶의 조각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숨 쉬듯이(이런 경구조차 누군가에겐 불가능한 일이다.)하고 있는 많은 행위들이 어떤 이에겐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인생에 대해 이룰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또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극 중의 소설가처럼 모질게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닐찐대 말이다. 난 오늘 또 살아있음에 죄스러움을 느꼈다.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들 영혼의 맑음을 회복할 수 있길 빈다. 시한 부 인생을 사는 이들의 정열을 보고 내 인생을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의지가 생겼다고 하면 내 죽음이 가벼워 보이냐고 그 인물들이 화를 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이 넓고 쾌활한 사람들이니까 재밌게 봐주겠지. 

 영화 하나로 인해 닫힌 마음이 조금 열리고, 우울함이 어느 정도 가셨던 것 같다.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즐거운 영화였다.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소녀의 외침


 이 세상의 법치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잘못한 사람은 죄의 값을 응당 치루기를 기다려야 하고, 피해자에게는 평생 씻겨내지 못할 상처에 대한 일말의 보상이라도 주어져야 한다. 물론 그 보상이 한낱 돈은 아니어야 한다. "왜요?왜 사과 받는데 저는 도망다녀야 해요?" 가족도 경찰도 어떤 어른도 믿을 수 없게 된 공주의 선택은 결국 이 사회가 만들어낸게 아닐까. 한 사람의 인생을 짙밟는데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는 세태, 그리고 그것을 바라만 보며... 지나가는 가십의 하나로 대하는 우리들. 엔딩의 동영상을 보며 전화를 받지 못하는 친구의 모습이...나의 현실일 것이다. 이 새벽에 이 영화를 보니 너무나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욱 마음 아프다. 오늘 또 어떤 불쌍한 영혼이 거리를 떠돌고 있을까? 부끄러운 세상이다. 정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오늘은 8월20일

 일련의 사건들... 마치 영화의 스토리를 보는듯이 신문의 일면은 물흐르듯이 몇 달 새에 이어져왔다. 유병언의 사망 발표-그 아들의 체포-여야 '세월호특별법'협상-유가족의 저항(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이 이어지는 가운데 교황의 방문-세월호특별법 재합의.... 곁다리로 임병장에 이은 군에서의 잇따른 가혹행위 관련 사건들, 거기에 관련된 남경필 아들의 군대내에서의 행각, 그에 이은 그의 이혼소식 등....
 위에서는 나라를 잠재우려고 하고 밑에서는 그 말도 안되는 독선에 치를 떨며 고개를 돌리거나 욕을 한다. 평화의 상징이라는 교황이 왔다갔지만 뭐가 변하는 게 있을까? 그런 것도 또 하나의 이슈로 치부되고 끝날뿐인 현실. 진실을 가늠할 수 없는 세태에 살고 있다. 뉴스를 봐도 새로울 것도, 희망적인 것도 없이 그냥그냥 넘어가는... 내 이웃에게는 좋은 일이 있었으면, 우리 사는 공동체엔 밝은 웃음만 넘쳤으면 하고 바라지만 돌아오면 그저 다음 날 또 일에 치여 다른 건 보지 못할 우리가 있을 뿐이다.
 갈 수록 염세에 빠지게 된다. 도저히 10년 후의 미래를 건전하게 희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 저 기성세대가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을 수가 없다. 믿고 밀어주려 해도 어느샌가 그들은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제발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현실말고 절로 달려나가고 싶게 하는 현실에 살고 싶다.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정상궤도로 가는 길


대만에 3박4일로 다녀왔다. 패키지 여행이라 별로 기대는 안했었는데 오히려 너무 더운 날씨 탓에 관광버스 타고 다니는 일정이 더 쾌적하고 좋았던 것 같다. 엄마랑 같이 다녀야 하니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던 것도 사실이고. 확실히 혼자 혹은 친구들이랑 여행 다닐 때는 모르는 길도 무조건 두 다리 믿고 가고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어머니랑 있으니 행동거지에 많이 제약을 받게 되긴 했다. 어쨌든 앞으로 이렇게 둘이서만 어디 갈 일은 극히 드물텐데 모자간에 새로운 추억을 하나 만든 것 같아서 제대하고 나름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대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외관이 그리 세련된 곳이 아니었다. 나는 대만이 그래도 아시아의 4룡(맞나?)이라고 불렸으니까 우리나라처럼 여기저기 고층빌딩 있고 사람들도 깔끔하게 입고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버스타고 가는 동안 건물들은 30년은 되어 보이는 노후함에 뭔가 고속도로나 길가에 다니는 차의 질(외제차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경이 눈에 띄었다. 사실 그건 대만이란 나라 자체가 외관에 딱히 신경을 안 써서 건물 리모델링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라고 한다. 20년 전 부강할 때 지어논 건물들로 쭉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래도 타이베이 시내, 101타워 있는 곳에 가보면 우리나라 명동, 광화문 못지 않게 삐까뻔쩍 해 보였다. 땅값도 우리나라의 그 곳과 비슷하다고 한다. 대만도 인구밀도가 장난 아니게 높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대만을 싱가포르랑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여기도 중국이기에 중국스러운 느낌이 더 컸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일본과 중국의 느낌이 반반 정도로 나는 것 같다. 신호등의 아기자기함이라던지 가는 곳 마다 있는 패밀리 마트와 세븐일레븐, 고양이 마스코트 같은 것들을 볼 땐 일본적인 느낌도 많이 들었다.  도로교통 관련 벌금이 앵간하면 10000 타이완달러, 즉 36만원 쯤 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교통이 혼잡해보여도 나름 질서정연하게 다니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가 많은데 신호대기 구간에 오토바이가 있을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재미있었다.

대만 사람들은 영어나 외국어를 별로 못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표정이 눈에 보였다. 한 번은 내가 지갑을 놓고 버스에 탄 걸 알아서 다시 찾으러 가는데 그 사이에 점원이 찾아서 내게 갖다준 적도 있었다. 돈에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직접 수고를 하면서까지 남을 생각하는 모습에 잠시 감명받았다. 똑같이 생겼어도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 대만인들의 생활방식이다. 돈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대만인들은 돈이 없어도 없으면 없는대로 잘 산다고 한다. 건물 리모델링을 안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고 있는 범위 내에서 쓰며 사는 경제관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화장실의 수도도 보면 대부분 한번 누르면 자동으로 나오고 꺼지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작은 부분에서도 절약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 가면 한국의 아쉬운 점을 많이 발견하는데 이렇듯 쓸데없는 에너지의 낭비를 피하는 모습은 정말 배울만 하다고 생각했다. 대만은 또 날씨가 엄청 더워서 여름이 되면 매일 에어컨을 풀 가동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전기세가 한국의 절반 이하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대만의 전기 생산구조와 전기회사의 재정상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긴 그렇지만  비싼 전기세 내도 여름만 되면 에너지 대란이니 뭐니 하는 우리나라랑은 대비되는 부분인 것 같다.

대만은 작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볼 거리가 되게 많았다. 사실 타이페이 시내에서만 놀았으면 했는데 막상 여기저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지형들을 보니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대만엔 생태학자나 지질학자들에게 좋은 연구자료들을 제공한다고 한다. 화련의 칠성담에서 드넓은 태평양을 직접 보니 눈으로 봤을 때는 동해나 서해의 바닷물과 다른 점은 많이 없었지만 그 광경이 정말 '방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형 특징상 대만은 우리나라의 것과 같은 해변이 남쪽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한다. 모래 대신 자갈밭에 발이 푹푹 파였는데 그래도 바다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열심히 헤치고 가서 직접 눈으로 태평양을 볼 수 있었다. 또  태로각이라는 협곡은 강원도와는 게임이 안될만큼 가파르고 (정말 강원도보다 커브 심하고 경사 심한 길은 내 처음 봤다, 해외를 별로 안 돌아다녀봤으니 당연하긴 하다만.) 위험해 보였다. 낙석 위험이 크다 해서 오랜만에 헬멧도 썼다. 동굴을 간다고 해서 엄마는 긴팔을 입어야 된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 동굴은 사람들이 손수 판 (사스가...중국인) 인공 터널이었기 때문에 그런 곳은 아니었다. 화련 말고도 예류 라는 곳은 바다 옆에 생긴 사막 같은 곳이었다. 버섯 같이 생긴 용암으로 인해 생긴 바위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무튼 날씨 탓에 제약요건이 너무 많아서 막 100% 만족스럽고 좋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대만이 후진 나라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배울만한 점도 있었고 가이드 분도 열심히 설명해주셔서 고마웠던걸로 기억한다. 죽을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볼 수 있을까? 정기적으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겠구나 싶다.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140630

 "...난 당신이란 책에 나오는 낱말들의 어간에서 나를 발견했어. 길었던 그 책에 내가 있던 동안 나는 매 순간이 새로웠어. 이젠 당신이란 책에서 이만 나올 때가 된 것 같아. 우린 서로를 보는 동안 더욱 발전했고 성숙했어. 안녕"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총체적 난국

어느 한 부분이 무너지면 그 쪽을 고쳐서 다시 원 상태로 복귀시키면 된다. 눌렸던 자리는 말끔히 회복되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가려고 하는 중, 다른 쪽이 무너지려 하면 그 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단순히 일으켜 세우기엔, 처음의 붕괴와 겹치는 부분도 많고 그러는 와중에 또 다른 곳에서 붕괴가 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연쇄적 충돌, 결국 그것은 복구 불능을 의미하며 모든 것을 다시 세우는 방법 밖엔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사고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전복사고였다. 대처가 잘 되었다면 물이 들어오기 전에 탈출하고 책임자들을 문책한 후 끝났을, 모든 생명들은 이상없었을 사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그들은 인생에서 특이한 경험 한번 했다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라시아 대륙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반도의 남쪽 끝 바다에서 일어난 이 하나의 사건은 이 작은 나라에 얼마나 크고 굵직한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는지를 보여줬다. 정치,사회,교육,경제,행정 어느 하나 손보지 않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시스템 자체일지 어떤 한 인물 덕분인지 돈 때문인지 의견도 분분했고 비판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아우성이었다. 도무지 어느 한 부분의 문제를 해결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을 대통령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깨달은 것이다.
 정부는 현재 리빌딩의 과정을 치르고 있고 각계각층의 인물들은 다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시민들에게 말하고 있다. 모두는 안다. 이것이 비극이며 다시는 되풀이되면 안된다는 것을. 그러나 한켠으로는 자각하고 있다.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 우리 주변에 언제 또 그런 비극이 닥칠지 모른다는 것을. 실의에 빠져 땅바닥만 긁고 있는다고 해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만드려는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하나의 거대한 조류를 이끌고 새로운 한국을 만들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의미있는 움직임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변화는 의식에서 나온다. 여지껏 이어져 온 무사안일, 대충대충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 구체화된 행동으로 표출된다면 잘 짜여진 구조마저 흐려버릴지 모른다.
 뉴스에서 몇 달동안 한 사안에 대해 특집 기사를 내고, 선거마저 넘어서는 화두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이 일이 우리 역사의 뚜렷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희생자들에 대한 전국적 애도의 물결, 어느 70대 괴물과의 추격전, 총리 등 정부인사들의 물갈이... 일련의 현상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강요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0대의 군경들은 원흉이라 여겨지는 한 명을 잡으러 이곳 저곳 찾아나서고 있고 아직도 물 속에 있는 실종자의 가족들은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행동하는 시민들도 거기에 아직 남아있다. 여전히 세월호는 현재 진행중이다. 오래된 것 같지만 이제 2달 되었다. 제발 앞으로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