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4일 월요일

단번의 위로를 뛰어넘어

 난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상대방에게서 괜찮아 나도 그래 라는 말을 듣고 멈춘다면 그것은 하수이다. 

위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만자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같이 위로를 하는 이들은 결국 그 나물의 그 밥으로서, 그저 그렇게 다같이 목표를 이루지 못 하고 시간만 낭비한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위로를 받고 안심하지 말자. 내가 왜 위로를 받는 처지에 처했는지를 추적하고, 그런 행위를 다시는 하지 말자.

세상 쓸데없는 말 :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시간은 나와는 상관이 없이 흐른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시간은 정방향으로 그저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거기에 내가 하등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시간과의 달리기 경주에서 내가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답은 한 가지이다. 시간보다 빨리 가기는 싫을테니, 시간이 나를 앞으로 밀 때 나는 한정된 그 시간동안 최대한의 resource를 투입하여 축적을 해가는 것이다. 축적의 힘으로 다음 번엔 시간의 흐름을 조금씩 내 편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축적하는 대상은 돈이 될 수도, 지식이 될 수도, 인간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 12월 2일 수요일

나는 다를 거라는 착각을 버리는 것

 "나는 다르다"

라고 쉽게 말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처음에 어떤 결심을 할 때는 내 각오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이러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력했기 때문이라고 폄하하기는 쉽다. 하지만 분명 그 누구도 처음부터 실패를 생각하면서 일에 덤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성공을 자신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필시 누군가는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아무리 도전해도 안되는 현실에 망연자실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에 도전할 때는 현실의 엄중함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 현실을 바탕으로, 나의 한계를 알아야 비로소 귀중한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된다. 그 전략은 나의 단점을 극소화하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GOAL에 이를 것인지를 탐구하게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어떤 성(castle)도 한 순간에 지어지진 않는다. 아무렇게나 돌을 쌓으면 금새 무너져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설계도를 짜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bias없는 감독을 하는 것이 안정궤도를 굴리게 될 것이다.  

2020년 12월 1일 화요일

표독스러움에 대하여

 요즘 시험 준비한다고 잠을 거의 5~6시간씩만 자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비단 시험이 아니라도 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새벽2시에 퇴근하고 6시에 바로 출근한다든지 아니면 어느 하나에 미쳐서 잠 몇 시간만 자고 무엇을 몇 달간 하여 어떤 것을 이루었다든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체력"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누구에게 얼마나 주어져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다들 체력 체력 말하는데 그것이 운동한다고 정말로 남들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인지, 그를 통해 오기가 생기는 것인지는 알기가 힘들다. 
위와 같이 미치도록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해도 내 몸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을 느낄 때는 저런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곤 한다.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지금 당장 동정심에 이끌리지 말자

 내 할 일이 있어 나만의 길을 탐색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택하여 있는 곳이 내 길이 아니기에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일 뿐 

속하고 싶지도 않은 곳의 사람들의 인정 때문에 억지로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표류를 더 할 수록 내가 한 외면의 시간들은 나를 개차반으로 몰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겉으로 취하는 동정이나 나아가 위선의 모습을 덜 보인다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내 상황에서 불쌍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줄 싸구려 동정심에 내 하루를, 내 몇 달을 고스란히 헌납하지 말자.

2020년 11월 8일 일요일

선형적인 시간

 최근에는 동년배들(다 지인들이니까 아무래도 그럴수밖에)의 결혼식을 줄기차게 다녀왔다. 
막혀있던 예식장이 뚫리고 나서 아무래도 전국적으로 이시기에 혼례가 몰아쳐서 진행되는 것 같다. "결혼"을 유예하는 이 세대이다 보니,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뭔가 특별해보이고 남들은 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해냈다는, 그런 느낌을 받곤 했다. 그만큼 우리는 결혼이나 헌신에 대해 굉장히 거리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세대이고, 나 하나만 살기도 힘든 세상에 입을 늘려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인 것이다.

아무튼 아직 우린 기혼자보다는 미혼자가 많은 게 현실이다. 결혼식이 기형적으로 많아진 것을 보며 출산율 하락은 남 얘기가 아닌가 싶지만, 너도 나도 결혼한 20대를 찾아보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이리 되다보니 어느덧 결혼하는 친구들을 꽤나 접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생기는 이질감은 적잖게 불편감을 안기곤 하는 것 같다. 

삶의 형태를 바꿀만큼의 경제적 안정을 누린 걸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같은 지역에서 초등,중등,고등 혹은 대학의 교육을 받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각자의 인생은 모두 다른 형태를 띄고 있기에, 누군가에겐 부러움을 누군가를 보면서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는 그런 과도기에 놓여있는 시기이다. 이제 좀만 지나면, 친구들 사이에 떳떳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사람도 생기겠지. 삶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한 해 한 해 살아가는 것만으로 무게를 더해가고 찝찝한 이물감을 안겨주는 지 모르겠다. 

우리의 시간이 선형적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이리저리 유동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간편할까 

2020년 10월 30일 금요일

삶은 이어지는 것

 인생은 어느 한 사건에 의해 바뀌는 분절적인 상태의 변화가 아니라, 그저 계속되는 흐름의 연속일 뿐이다. 오직 죽음으로만,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마저도 사후에 계속되는 것이 개개인의 시간이다. 그러니 어떤 incident 하나만으로 내 인생이 바뀌겠지, 이것만 하면 고통 끝이겠지 이런 것은 피지배계급을 쉽게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COVID-19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자꾸 포스트코로나니 뭐니 이상한 말 만들어대면서 코로나만 '끝'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느니 세상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느니 하는 소리는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봐서 괴물이 휩쓴 뒤에 다시 희망찬 bgm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캐릭터들이 오손도손 사는 세상을 자기들 머리 속에서 자의적으로 재생하는 짓일 뿐인 것이다.

요는, 지금 당장 문제가 있으면 가능한 부분까지 당장에 뭔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검토해보고...이런 현실이 걷히고 나면 하겠습니다... 하는 것들은 그냥 지금은 내가 하기 싫고 언젠가 해결되길 바랄 뿐입니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결국 자기는 하기 싫다는 것의 다른 표현방식일 뿐이다. 

모든 것에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남들과 똑같아질 뿐이다. 어려운 현실이 있으면 그것에 대적하거나, 탓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떻게 이에 대응할 수 있을지나 골똘히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이건희 별세

 (이건희 삼성 전 회장 별세)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거물이 떠나갔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선 기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있어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아래는 이건희 회장이 남겼다는 글 전문




-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 -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번 살아보세요.

돈과 권력이 있다 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 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세요.

3천 원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 주고,

3천만 원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 주고,

5억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 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 주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바로 건강한 몸이요!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고요.

건강할 때 있는 돈은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차를 몰아줄 기사는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사람도 역시 있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 테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뿐인 생명이라오!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 진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겠지요.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너무 총망히 살지들 말고,

후반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만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 ...

힘없는 나는 이제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

- 이 건 희 -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걸까

매일같이 고민한다고 더 잘 살아지지도 않고

남과 비교한다고 내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자기만족이나 자기위로를 하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개인의 즐거움을 다 버리고 살고싶지도 않고


수십조의 재산이 있는 사람도 후회하는 게 삶이라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오늘 하루는 그런 질문으로 채워질 것 같다.

2020년 9월 30일 수요일

`20/09/30

1. 
그러고보니 내게 이런 블로그가 있었음을 오랜만에 또 인지했다.
꽤 오래전부터 유지해왔고 글은 정기적으로 써보자고 했지만, 
자주 보지 않다보니 결국 또 흐지부지 되고 마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향적인 사람에겐 자신을 외부에 투사할 수 
있는 좋은 통로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밖에서 자신을 보
여주는 것에 미숙한 그들에게 타인을 끌어낼 수있는 힘이 자신에
게도 있음을 증명하는 도구가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마음이 답
답할 때마다 가상의 독자를 두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한 기분이 들어 마음을 털어논 기분이 들었고 생각이 정
리되어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기적으로 이렇게 뇌를 비우고 나의 삶을 정리하는 시
간을 가져야만 한다. 


2. 
일찌감치 그만두려던 회사는 다른 목표의 등장으로 어쩔 수 없이 더 다니게 되었고, 나름 괜찮은 근무지에 있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조직에서 엄청나게 뛰어나서, 내 능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기 싫다, 이런 것도 아니었다. 

이 조직이 병신같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신분이 나를 옥죈다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목적이 직장 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더 나은 조직을 찾는 이직활동이 결국 내 삶의 목표는 될 수 없겠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된 것이다. 

회사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함으로써 대가를 받으며 그 대가
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회가 돌아가는 톱니의 일부분의 역할
을 할 수 있다. 절대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톱
니의 역할을 해야하고,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들의 덕택으로 살
아가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 있어, 자유 시민의 삶이 보장
되는 국가에서, 누군가의 밑에서 평생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
닌 남이 시키는 일만을 하며 살아간다면 내가 군대에 있을 때와 
무엇이 그렇게 크게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10
년, 20년 후의 나에게 떳떳할 자신이 없었고 나이가 들어 내 옆
에서 방구나 뀌고 트름하며 여전히 눈치만 보며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싶진 않았다. 
물론 하루 8시간만 적당히 타협하고 자신의 삶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큰 고통없이 유지할 수 있는 job의 소중함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는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리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때 한편으로 캥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안락함으로 보이는 그 시간들이 향후의 고통의 연속으로 변모할 것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고 생각했다. 
 내 성격에 하고싶은 것을 애써 무시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기만이 될 것이다. 


 3. 
삶의 자유는 온전히 내 마음을 잘 지키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믿고 있었다. 
 
내 빵을 내가 사 먹지 않았을 때까지만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경제적인 걱정을 하지 않을 때 사람은 도덕이나 윤리 그리고 철
학에 대해 깊이 사유를 할 수 있다. 

당면한 생존이 너무나 급하면, 옆 사람이 어떤지, 삶이라는 게 무엇이고 정의는 어떤 것인지 따질 겨를조차 없게된다.범죄를 미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루고 있는 문화는 모두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이후에나 이뤄지게 된다는,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사회시간에 원시인의 진화과정을 통해 이미 다 배운 것을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야 너무나 늦게 체득하고 말았다. 

자신의 빵을 당당하게 만드는 사람이라야 온전히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고, 세상 앞에서 일대일로 싸우며 다른 이들의 공격에도 공정히 맞설 수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에는 그런 역할을 노예에게 아웃소싱 했고 지배계층은 온전히 놀고 먹으며 남는 시간에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런 위대한 사상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도 크나큰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평생을 후원을 받으며 산 마르크스의 노동철학을 노동자계급이 신봉하는 것도 인간세상의 웃기는 점인 것이다. 

 겪어 보아야, 현실을 깨닫게 된다. 20대 중반까지 난 또래보다 조숙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나만 깨달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지적 허영에 빠져 철학서도 읽고 어려운 소설만을 골라 읽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삶은 그런 데서 깨달음을 주지 않았다. 내 딴에는 많은 것을 느낀 양 독후감도 쓰고 그랬던 것 같지만, 전부 허울뿐이었고 상상에서 이뤄진 것들이 많았다. 

 우선 생존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삶의 무게를 알게 된다. 
초 중등학교 때도 봉사활동을 시키기보다, 부모님 도움없이 자기가 벌어서 사는 체험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대학 때 내 용돈도 내가 제대로 벌어보지 않았다는 게, 지금 내가 처음부터 갈피를 못잡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꺠닫게 해줬다면 5년 정도의 시간은 아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지나간 세월을 더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5년을 더 젊게 사는 수 밖에는 없다. 남들보다 더 움직이고, 편한 것을 찾아가는 생활을 계속해서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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